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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박사 서번트리더십Dr. Lee Jong Wook’s Servant Leadership] 해외에서 더 칭송받는 진짜 글로벌 리더! 본문
[이종욱박사 서번트리더십Dr. Lee Jong Wook’s Servant Leadership] 해외에서 더 칭송받는 진짜 글로벌 리더!
세이지리더십 2020. 5. 28. 13:43요즘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글로벌 리더 육성을 비전으로 삼기도 합니다 어느 한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죠.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는 국제인권, 환경, 기후변화, 테러, 전염병 문제등 글로벌 이슈에 무관심합니다. 2015년 세계교육포럼을 계기로 글로벌시민교육은 한국 교육의 주요한 화두로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초보단계인 셈이죠. 다시)오늘은 글로벌 시민, 글로벌 관리자를 넘어서서 해외에서 더 칭송받는 진짜 글로벌 리더 이종욱 박사님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종욱 박사는 한국인 최초의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 전문기구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경복고등학교에 다닐 때, 종로구청장을 지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과외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벌 만큼 강한 자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양대 공대를 졸업한 후에 다시 서울대 의대로 진학하였는데, 이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결심에서 나온 결정이었죠. 이후 대학 재학 중에 경기도 안양에 있는 성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시절, 일본에서 모금한 돈으로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던 가부라키 레이코(鏑木玲子)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당시 레이코 여사는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을 돕고자 천주교 봉사자의 자격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종욱 박사에게 불리는 다양한 별명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작은 거인' 'a Man of Action' ‘보건계의 수장’ 여러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고 있지요. 그는 해외에서 훨씬 더 유명합니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 사모아의 린든 B. 존슨 병원의 의사로 일했죠.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와의 인연은 WHO 남태평양 지역사무처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하며 맺어진겁니다. 그는 사모아에서도 열정적으로 한센병 환자를 돌보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어서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처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종욱 박사는 2003년 한국인 최초로 WHO 사무총장으로 취임하게 되죠.
이종욱 박사는 에이즈에 맞서 '3 by 5'(2005년까지 개발도상국 거주 300만 명에게 항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제공) 사업을 벌였고, AI(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방지, 소아마비와 결핵 예방, 흡연 규제 등으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관행상 사무총장은 국가 원수급 예우를 받지만 그는 청빈하게 생활했죠. "가난한 나라가 낸 분담금도 있는데 그 돈으로 호강할 순 없다", 1500cc 하이브리드 차를 승용차로 몰았고, 비행기를 탈 때도 항상 1등석 대신 2등석을 고집했습니다. 흔한 아파트 한 채도 갖고 있지 않았고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부릅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소아마비 발생률을 세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낮춘 이종욱 박사를 '백신의 황제'라고 부릅니다. 이종욱 박사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화려하고 편협한 외교관의 모습을 상상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국제기구에서는 편협한 인종주의와 속 좁은 애국심으로는 버틸 수 없으며, '열정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또한 외교관의 덕목으로 추진력을 꼽으면서, "하려고 하는 일은 일단 시작해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이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구요. 2006년 5월 22일, 이종욱 박사는 WHO 총회 준비 도중 과로로 쓰러져 이 세상을 떠났셨습니다. 전 세계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의사'를 잃어버린 겁니다.
은퇴하면 권력자가 아닌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종욱 박사는 인류애라는 공동 가치를 몸소 실천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글로벌 리더죠. 검소하고 겸손하게 항상 낮아질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언행일치의 행동하는 양심의 리더. 우리나라 현사회에서 필요한 참리더의 모습 아닐까요?.
“시간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어. 각국의 국가 원수를 자주 만나고 좋은 음식만 먹고, 내노라하는 사람들과 회의를 하지. 대접을 받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혹시 교만해지고 또 건방져질지 말이야. 그래서 나는 항상 낮아질 준비를 하고 지낸다네. 은퇴하면 한 사람의 자연인 이종욱일 뿐이지.”
자,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이종욱 박사의 말입니다.
다시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럴 듯한 핑계가 생기지. 시작하기도 전에 고민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 해. 옳은 일만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란 걸 명심하라고."
이종욱 박사의 열정과 소신, 헌신적 서번트 리더십을 기억하며,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도와주고 지원하는 ‘우리’가 되어 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Nowadays, universities in Korea have a vision of fostering global leaders. The necessity for cooperation to cope with global problems that cannot be solved at any one country is increasing. But in reality, we are indifferent to global issues such as international human rights, the environment, climate change, terrorism and epidemics. Global Citizenship Education has emerged as a major topic in Korean education since the 2015 World Education Forum, but it is still in its infancy. Today, let's introduce Dr. Jong-wook Lee, a true global leader who is more praised abroad than in Korea.
Dr. Jong-wook Lee was the first Korean head of the United Nations (UN) specialty organization. When he attended Gyeongbok High School, his father, the director of Jongno-gu, died, and he was self-reliant enough to earn tuition while tutoring students. After graduating from Hanyang University, he went back to Seoul National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a decision he made to live a life of service. Later, while attending college, he was married to Reiko Kaburaki, who was caring for Hansen's disease patients in Korea with her money raised in Japan while he was taking care of Hansen's disease patients in St. Nazaro, Anyang, Gyeonggi-do. At the time, Ms. Reiko, despite being a Japanese, came to volunteer as a Catholic volunteer to help Koreans.
There are various nicknames called Dr. Jong- wook Lee. There are a lot of nicknames that follow, such as ‘Schwizer of Asia,’ ‘The Emperor of the Vaccine,’ ‘The Little Giant’ 'a Man of Action' ‘The head of the health system’. He is much more famous abroad. At the age of thirty six, he worked as a doctor at Linden B. Johnson Hospital in Samoa, a small island in the South Pacific. The relationship with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was established by starting medical service at the WHO South Pacific Regional Office. He was passionate about caring for Hansen's disease in Samoa and he wanted to treat more people. He began his international career as an advisor to Hansen's disease at the WHO's 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 Dr. Jong- wook Lee became the first Korean WHO Secretary in 2003.
Dr. Chong-wook Lee, a `` 3 by 5 '' (providing anti-AIDS virus treatment to 3 million people living in developing countries by 2005) against AIDS, has been excellent in preventing AI spread, polio and tuberculosis, and smoking control. His leadership was recognized. In practice, the Secretary General was honored by the head of state, but he lived in vain. "There is a contribution made by poor countries, but I can't be affluent with it." He doesn’t have a common apartment and lived his life serving poor and minority people, so they call him "Schwizer of Asia."
‘Scientific American’ calls Dr. Jong-wook Lee, who lowered polio rates to less than one in 10,000 people worldwide, as Emperor of the vaccine. Dr. Jong-wook Lee advised young people who wanted to work i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not to imagine fancy and intolerant diplomats saying that i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narrow racism and narrow patriotism are unbearable, and it is a sin to do this without passion.
He also cited the driving force as the diplomat's virtue, "You have to start and push what you are trying to do, and you only have to worry about whether this is the right thing and must do it for humanity."
‘Time’ announced that he was named the 100 Most Influential People in the World. On May 22, 2006, Dr. Jong-wook Lee passed away during the preparation of the WHO General Assembly. The world has lost "the biggest doctor in the world."
“I honestly don't know how I will be look like over time. I often meet many presidents of a variety of countries, eat good foods, and meet with people who is famous. I don't know what happens when I'm treated. Who knows I may be proud and cocky? So I'm always ready to be low. If you retire, I am just one ordinary person, Lee Jong-wook. ”
Dr. Jong-wook Lee, who wanted to return to a natural person instead of a powerful leader when he retired, is a genuine global leader in Korea who has lived up the common value of humanity. I am touched that he was always ready to be lowered with frugality and humility. A leader of conscience in action. Isn't it the kind of true leader needed in my country?
Well, It is today's message. Dr. Jong- wook Lee said.
"If you don't think there's a lot of reasons and plausible excuses. Even if you're worried before you start, you can't do anything. Keep in mind that if you do the right thing, everyone will help and support you."
How about being a “us” who remembers Dr. Jong Wook's passion, belief and dedicated servant leadership and praises, helps and supports the right people?
참고자료: 네이버지식백과 , 위키백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